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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디지틀울산문화대전

관리자 · 2020.04.16 21:29 (수정 2020.04.16 21:32) · 조회 43

[상세정보]

[정의]
1960년 3·15부정선거에 항의하여 일어난 울산 지역의 민주주의 운동.

[역사적 배경]

1958년 제4대 국회의원선거와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선거에서 부정 선거가 있었다. 경찰의 선거 개입과 부정 선거에 대한 항의가 일어났다. 1960년 2월 28일 대구학생시위를 시작으로, 3월 15일 마산에서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시작되었고,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의 주검이 발견되면서 2차 마산의거가 일어났으며, 이후 국민적 항의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4월 18일 고려대생피습사건이 있었고, 4월 19일에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중심이 된 가두시위에 시민들이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대통령의 직무실이 있던 경무대로 몰려갔고, 이를 막던 경찰의 발포로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시위는 계속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6일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이후 노동 운동과 진상 규명 운동 등 사회 각 부문에서 다양한 사회 운동들이 일어났으며, 통일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한편 1960년 6월 15일 개정헌법이 공포된 이후 민의원 참의원제도로 국회의원선거법이 바뀌면서 제5대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하여 의원내각제에 입각한 제2공화국이 시작되었다.

[경과]
울산의 4·19혁명은 1960년 4월 26일 오전 8시 울산농림고등학교[현 울산공업고등학교]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울산읍민과 울산여자중·고등학교 학생, 울산중학교 학생 등이 합류하여 시위대의 수는 늘어났다. 시위대는 울산경찰서로 몰려가 “이승만 대통령 물러가라”, “고문 경관 체포하라”, “협잡 선거와 현 정부 규탄”, “민의원 사퇴”, “구속 학생 석방” 등을 외쳤으며, 울산군수와 울산경찰서장에게 부정 선거의 책임을 물었다. 중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된 울산 지역에서의 시위는 4월 29일까지 이어졌다. 4월 27일 언양면에서는 언양중학교와 언양농업고등학교 학생 600여 명이 시위를 벌였고, 언양면장과 언양지서장을 비롯한 공무원들이 시위에 동조하였다. 대현면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이 시국수습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공무원·반공청년단장·자유당 인사들에게 사임 선언을 요구하였다.4월 28일에는 울산농림고등학교 졸업생이자 한양대학교에 재학 중 서울 경무대 앞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총에 맞아 사망한 정임석의 유해가 울산읍에 도착하였고, 정임석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가 언양·하상·농소·강동·장생포 등지에서 일어났다. 시위에 참여한 학생과 주민들이 경찰지서, 면사무소, 반공청년단장의 집, 자유당 간부의 집 등을 파괴하였다. 한편 부산 지역 청소년 150명이 울산읍까지 찾아가 경찰서와 파출서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4월 29일 남창중학교 서생분교 학생 200여 명이 면소재지에서 행진하였다. 5월 3일 울산농림고등학교 학생은 3.15부정선거에 가담한 교사의 사퇴를 요구하며 동맹 휴학을 하였다. 또한 울산농림고등학교 학생을 비롯해 울산고등학교·울산여자중학교·울산여자고등학교·울산중학교·울산제일중학교 학생 약 2,500명이 시위를 일으켜 울산경찰서로 몰려갔다. 5월 13일 울산군민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임석의 장례가 군민장으로 치러졌다.

[결과]
울산 지역에서 일어난 4·19혁명 과정에서 학생과 지역민들은 부정 선거를 주도한 공무원·경찰·정치인을 공격하였다. 이 중 가장 주요한 비판 대상은 경찰이었다. 울산의 첫 시위에서 공격 대상은 군수와 경찰서장이었으며, 시위대의 습격을 가장 많이 받은 곳도 경찰지서와 파출소였다. 울산 4·19혁명의 또 다른 특징은 국회의원 선거 과정의 갈등이 4·19혁명 과정에 폭력 행위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제4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부정 선거로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던 울산 을구 지역에서 낙선한 정해영 후보 측에서 김성탁 후보 측에 보복 행위를 가하였다. 울산 을선거구 지역인 온산·강동·농소면 등에서 뿐만 아니라, 울산 갑선거구 지역인 언양에서도 보복 행위가 발생하였다. 제4대 국회의원선거 당시 부정 행위와 관련된 개인을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등 지역 내 갈등이 표출되었다. 지역 정치 세력 사이의 갈등은 제5대 국회의원선거까지도 계속되었다. 울산농림고등학교 학생들은 선거 기간 동안 김성탁과 정해영을 대상으로 이들이 출마한 울산 을선거구 지역 곳곳에서 반혁명세력규탄시위를 벌였으며, 정해영의 운동원과 선거 개표일에 충돌하기도 하였다. 울산의 4·19혁명 이후 울산 지역에서도 자유당이 붕괴되고, 민주당과 혁신정당의 지지율이 높아졌다.

[의의와 평가]
울산 지역에서 일어난 4·19혁명의 직접적인 계기는 3·15부정선거였지만, 울산 지역의 정치 세력 사이의 갈등이 4·19혁명이라는 전국적 상황과 맞물리며 표출되었다는 지역사적 특징을 띠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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