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석 열사는?

△ 정임석 열사 (울산공고 18회 졸업앨범)

정임석 열사는 울산농림고등학교 졸업생이다. 1938년 9월 11일 울산 북구 천곡동에서 태어나 농소초등학교와 농소중학교를 거쳐 울산농림고 농업과(18회)를 마친 뒤 서울 한양대학교 공대에 입학했다. 서울 생활 2년째인 1960년 4월 19일 경무대 앞에서 대학생들이 벌인 민주주의 시위에 동참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7시경 경무대 어귀에서 경찰이 발포한 총탄에 북구 관통상을 입고 서울대학병원으로 후송됐다.

울산 가족들에게 정임석 열사가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며칠이 지난 4월 23일 “임석 위독 급히 상경”이라고 쓰인 한 통의 속달전보였다. 전보를 받고 기차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간 것은 친형 정반석씨였다. 친 형으로 아우를 떠나보내는 절절한 마음은 1960년 6월 20일과 21일 두 회에 걸쳐 『부산일보』에 실린 “사‧일구에 바친 아우의 임종”이란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1960년 4월 19일 경무대 경찰 발포 직전 모습 (출처: 동아일보 보도기사)

정임석 열사의 임종

가족들은 4‧19 혁명 소식과 함께 경찰이 학생들에게 발포했다는 소식을 듣고, 매일같이 신문을 뒤지며 쓰러진 사망자와 부상자 명단을 찾았다고 한다. 그렇게 노심초사 하던 때에 병원에서 보낸 전보는 청천벽력과 같은 충격을 안겼다.

정임석 열사는 복부에 총을 맞은 뒤 병원에 실려 온 뒤 양쪽 폐가 모두 파열 돼 긴급수술을 했다. 첫 수술에서 겨우 폐를 꿰맸지만 의식을 겨우 회복한 것은 30시간이 지난 뒤였던 4월 21일이었다. 그러나 신음을 절로 내뱉을 만큼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친 형이 병원에 도착한 뒤 첫 면회를 했을 때도 호흡은 매우 거칠었고 신음 소리도 높았다고 한다. 복부 양쪽을 고무줄이 끼어진 채 두 코로 연견한 호흡기를 단 채 병세가 악화되고 있었다.

열사가 의식을 차리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참으며 형에게 “십사 년간이나 애써 공부시켜 주신 노고에 보람도 없이 이렇게 되었다.”라는 미안함을 보였다. 그런 말에 형 반석 씨는 “민주주의를 몸소 실행한 훌륭한 아우를 가진 것이 내 인생 참된 기쁨이다”며 안심을 시켰다고 한다. 그러자 정임석 열사는 “형님 고맙습니다. 비록 죽는다 하더라도 원통치 않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더 가쁘게 숨을 쉬었다.

그 이후 산소부족을 느끼며 ‘형님’과 ‘어머니’를 소리 높여 찾았고 의식도 흐려져 갔다. 형은 급하게 간호사를 찾고 의사를 청했지만 “형님 갑니다. 하늘로 갑니다.”란 마지막 짤막한 유언을 남기고 열사는 절명했다. 그 때가 4월 25일 오전 8시 30분이었다. 가난한 고학생으로 청운을 품고 서울로 유학을 떠났던 한 젊은 청춘이 그렇게 별이 된 것이다.

△ 『부산일보』에 친 형이 기고한  “사‧일구에 바친 아우의 임종”

울산군민이 함께 슬퍼한 귀향

정임석 열사가 민주열사로 세상을 떠난 다음 날인 4월 26일에는 전국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거리로 나왔다. 울산에서는 열사의 고등학교 후배들인 울산농림고 학생들이 앞장서 시내로 행진을 했고 3천 여 명의 학생시민이 울산경찰서부터 시작해 도심 전체를 행진했다. 그리고 그날 부정선거와 독재로 4‧19 혁명의 피를 흘리게 만든 원흉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임석 열사의 유해는 4월 28일 울산역에 도착했고 마중나온 이들은 어머니를 비롯한 일가 친척 들 뿐 아니라 이 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었다. 그날 울산읍 민주당은 유골봉영식을 가졌고 이후 본가에 안치되었다가 5월 13일 오전 10시 30분에 ‘울산군민장’으로 장례가 진행됐다. 열사의 고향인 북구 농소면 정곡리에서 거행한 군민장에는 3천 여 명이 참석했다. 하늘도 슬퍼했는지 부슬비가 내려 명복을 비는 시간들이 더 엄숙하게 진행됐다. 그리고 낮 1시경 묘지에 안장됐다.

정임석 열사 추모제 이어가

열사가 묻힌 묘소의 주소는 울산광역시 북구 천곡동 산 17번지다. 오천 정씨 문중의 선산이다. 묘소 앞 비석에는 「순국대학생오천정군임석위령비」가 비문으로 새겨졌다. 4‧19혁명 때 순국한 168명 중에서 대부분이 서울 수유리 4·19혁명묘지에 안장됐지만 정임석은 고향에 묻힌 것이다. 수유리 4‧19 묘역에도 가묘와 비석이 세워졌다. 그리고 모교 울산농림고(현 울산공고) 교정에 동창회가 1965년에 추모비를 세웠다. 앞면에는 박목월 시인의 추모시가 새겨졌고, 뒷면에서 간단한 약력을 볼 수 있다.

정임석 열사는 1962년 4월 건국포장을 수여받았다. 열사 추모제는 1961년 5.16쿠데타로 멈추었다가 1980년 이후 다시 개최됐으며 매년 4월 19일 묘소에서 열린다. 2000년 ‘4.19민주열사정임석추모회’가 결성돼 추모 사업을 이끌고 있다.

정리 : 울산교육청4.19혁명60주년기념사업TF 배문석(울산노동역사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