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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석 열사 형이 쓴 회고록 2 (1960.06.20~21)

관리자 · 2020.04.28 22:59 · 조회 34

큰뜻 품고 고학한 이년 처음 해 입은 국산양복 아끼다 남긴 채

「형님하늘로갑니다」가 마지막

입력 : 1960-06-21 [15:00:00]

간호부의 말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사월십구일 오후 칠시경 경무대 어귀에서 복부 관통상을 입어 이곳에 운반되었다.

「엑스·레이」를 찍어본 결과 양쪽폐가 파열되어 긴급 수술을 하게 되었다. 첫 수술에서 겨우 폐는 꿰맸으나 만 삼십 시간이 지난 사월이십일일 미명에야 겨우 의식을 회복했다. 그날부터 막심한 고통에 신음했으나 어젯밤에는 약 세시간 정도의 수면도 취하고 입원이래 좋은 경과를 보여주고 있다』

간호원의 이상과 같은 설명을 듣고 나의 마음이 한결 풀리고 기분이 명랑하여졌다.

고향에 소식을 전하고 그의 곁으로 가까이 가니 호흡은 점점 거칠어지고 그의 신음소리는 더욱 높아만갔다. 산소는 제대로 공급되고 있었으나 산소부족이라고 자꾸만 외치면서 「형님」, 「어머님」이라고 불연속적으로 자꾸만 소리높이 부른다.숨막히는 광경을 보기에 너무나 안타까와 나는 간호원을 찾고 의사선생을 불러왔다.

그의 얼굴은 더욱 더 새파랗게 변하고 간간이 「형님」이라는 소리만 들린다. 나는 그이 손목을 꼭잡아 주었다. 순간 그는 『형님 갑니다. 하늘로 갑니다.』소리와 함게 아... 그것이 절명이었다. 의사선생에게 두세 번 간청해보았으나 『너무나 상처가 심했어』라는 말뿐이었다. 아우는 이렇게 갔다. 사월이십오일 오전 팔시 삼십분, 그러니까 내가 병원에 도착한지 곡 한시간 만에 절명했다. 막상 아우의 죽음 앞에 당도하니 슬픔도 눈물도 아무것도 없다. 오직 허탈한 감정외엔 가슴이 텅비인 허무한 감정뿐이었다. 눈 앞에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후 아우의 시체는 곧 시체실로 운반되었다. 그곳에는 어느새 알았는지 아우의 학우가 서넛와서 촛불을 켜고 향을 꽂고 아우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오후 사시경 아우의 시체는 화장실로 운반되어 화장이 끝난 후 유골을 찾았다. 유골을 안고 나올 때 나는 가슴이 터지도록 울었다. 빈곤한 농촌에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그래도 배우겠다는 향학의 큰뜻을 품고 상경하여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읽는 전도유망한 고학생이었던 그가 앙상한 뼈조각으로 변한 것이다. 나는 유골을 안았을 때 온천지 아니 발 앞이 캄캄함을 느꼈다.

간신히 조그마한 여관방으로 안내받았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사방에서 「데모」군중의 아우성 소리가 천지를 뒤흔드는 것 같고, 간간이 들려오는 총소리는 살벌한 공기를 감돌게 하였다. 이윽고 날은 밝았다. 사월이십육일 약속이나 한 것처럼 거리거리마다는 인파 또 인파로 메워졌다. 드디어 아우가 힘껏 목메어 외치던 정당한 아우성은 주효하여 이박사가 하야한다는 성명이 거리의 「스피커」마다 그리고 「라디오」마다에서 흘러나왔다.

「원통하다 아우의 넋이여! 삼천만민족이 목메어 고대하던 독재자의 말로를 보지 못하는가」 나는 또 한 번 울었다. 정말 즐거워서 터지는 울음이었을 것이다. 그 뒷날 낮에 울산역에 도착하였다. 어머니와 누이동생, 그리고 일가 친척들이 어느새 알았는지 길을 빽빽히 메운 군중소게 하차하였다. 나를 껴안고 목놓아 우는 어머니, 그리고 유가족과 함께 울어주는 이만ㅇ르 헤아리는 군중들, 이것이 겨레의 얼이고 한민족의 넋임을 재삼 깨달았다.

울산읍 민주당이 베풀어주는 유골봉영식을 끝마치고 조용한가운데 본가로 안치되고 분에 넘치는 군민장을 베풀어준다는 통고다.

오월십삼일 부슬비가 내리는 대지 속을 헤치면서 유골은 군민장 영결식장으로 안치되었다. 수많은 조문객의 헌화와 애끊는 조사 속에 식은 거행되었다. 이슬비 담뿍맞은 여고생들의 창자를 끊는 듯한 장엄한 조사가 끝나고 식도 끝났다.

때마침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방울로해서 삼천여조객의 옷은 함뿍 젖었을 게다. 유골이 장지로 운반되면서 비는 더욱 자꾸만 퍼부었다. 삽시간에 개울을 이룰 듯한 빗발에도 작업은 계속되었다.

나는 오늘의 이 슬픔을 하늘도 무심치 않아 이렇게 눈물을 내쏟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무덤봉우리도 끝나고 그의 업적을 천고에 전할 위령비도 건립되었다.

그가 항상 소중히 아끼는 서적과 십이년간 형설의공의 실적인 소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졸업장과 우등상장, 개근상장, 하나하나가 그의 공과 그이 손때가 묻지않은 것이 없다. 그위에 더욱 가슴을 오려내는 것은 서울에 이년간이나 머물러 공부를 하면서도 새양복 한 벌 못해 입고 항상 형의 누더기만 입고도 만족하다가 금년 정월에 국산양복 한 벌 마추어 입고 얼마나 기뻐했느냐? 그것도 아낀다고 삼개월도 채 못입은 것이 산소 앞에 나와있다.

나는 손을 벌벌 떨면서 그의 책장에 불을 놓았다. 아니 불꽃? 네에게 어찌 인정이 있으리... 사정없는 불꽃은 차례차례로 태워 간다. 책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졸업장, 각종 상장에 그리고 그다지도 소중이 입던 양복이 푸른 연기를 내면서 쉴새없이 탄다. 어머니는 애통해 우시고 또운다. 나도 울었다.

산소에 있는 모두가 다 울었다. 이제는 영원이 갔다. 높다란 묘지 봉우리 앞에 우뚝솟은 위령비만이 민주제전에 붉은 선혈을 뿌린 내아우의 업적을 천추 만대에 길이 전하리...

비문은 이러하다.

『순국대학생 오천정군임석 위령비』!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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